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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st in thought

푸르게 빛나는

by Han Bi Choi 2023. 7. 1.

김혜영 - 푸르게 빛나는
2023.06.30에 읽음









타로를 공부하는 친구에게 타로 점을 봐 달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카드 몇 장으로 저 자신에 대해 알 수 있다는 말에 “나 이런 거 너무 좋아해...!”라며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친구 앞에 앉았지요. 총 아홉 장의 카드를 뽑아야 했는데, 포물선 모양으로 펼쳐진 카드를 아무리 노려봐도 '절 뽑으세요, 주인님? 같은 느낌을 주는 카드는 없어서 그냥 아무렇게나 골랐습니다. 중간쯔음에서 하나. 쩌어기 왼쪽 부근에서 둘. 너무 왼쪽에 치우쳤나 싶어서 오른쪽에서 또 몇 장...그렇게 얼렁뚱땅 운명이란 탈을 쓰고 제 눈앞에서 뒤집힌 카드들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바로 소드 9번 카드였습니다.

눈을 가리고 괴로워하는 사람과, 그 주위로 늘어선 아홉 개의 검.

걱정과 스트레스, 불안을 상징하는 카드로 그게 제 장점 카드였습니다.

“아니, 어떻게 불안이 장점일 수가 있어!"

그때 저는 친구를 붙잡고 세상 억울하다는 듯 외쳤었는데 새삼 쇼트 시리즈를 마감하고 보니… ‘정말 용하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작품집에 담은 글들은 모두 불안에서 시작되었거든요.

집에 무언가가 침입하게 된다면 어떡하지? 좋아하던 친구와 멀어지게 되면 어떡하지? 평생을 약속한 사람에 대한 신뢰를 영원히 잃게 된다면 어떡하지?

그렇게 켜켜이 쌓아 올린 불안이 위태롭게 휘청이며 쓰러지는 순간을 담아 보고 싶었습니다.

한편으론 아무런 해결책이 없는 결말에 무력감을 느끼셨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제가 느끼고 경험했던 불안들에도 늘 답이 없었던 터라, 여기에 어떤 놀랄 만한 방법이 있다고 거짓말을 붙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훗날 제가 위인전에 남을 만큼 똑똑해져서(외계인에게 납치되거나, 모종의 비밀 단체의 실험체가 되거나, 노벨상 수상자의 영혼이 빙의되거나, 나이를 100살 쯤 더 먹으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획기적인 답을 알아내게 된다면 온갖 노력을 총동원하여 여러분께 그 방법을 전달하러 찾아가겠습니다. 그러니 그때까지 우리 불안에 삼켜지지 않기로 약속해요. 이렇게 불안을 읽고 씹고 뜯고 맛보면서, 무해하게 즐길 수 있는 불안을 나누면서 함께 면역력을 기르고 싶다는 것이 제 소소한 소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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