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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st in thought

내가 잘못 산다고 말하는 세상에게

by Han Bi Choi 2023. 1. 9.

정지우 - 내가 잘못 산다고 말하는 세상에게
2023.01.03에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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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사람은 어쩌다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생겼을 때 지나칠 정도로 말을 많이 한다. 이 상황이나 이 관계에서 이 사람에게 어디부터 어디까지 말하는 게 적정한지 파악하기 어려워한다. 이 얘기 저 얘기를 서두없이 늘어놓기도 한다. 그러다가 자신이 무슨 말을 이렇게 늘어놓나 싶어서 말을 어느순간 끊고 멀뚱멀뚱 쳐다보기도 한다. 그러면 보통 이상하다고 느끼게 되지만 '이 사람 요즘 외로웠나 보다. 그래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이렇게 하는구나' 생각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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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는 방식, 숟가락을 쥐는 형태, 인사할 때마다 드러내는 어조,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가능하면 잘게 쪼개서 바라보고자 하는 게 사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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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보라매공원에서 침을 튀기며 북한과 빨갱이에 대해 열변을 통하는 아저씨들 옆을 지나치면서, 무엇이 그들을 저리도 열심히 자기 말만 하게 만든 건지 생각한 적이 있다. 온전한 대화, 서로의 생각을 들어가며 조율하고 삶을 만들어가는 대화의 방식에 대해 한 번도 제대로 익힐 기회가 없었던 건 아닐까 싶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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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대에 대해 감각한다는 것은 단순히 세련됨이나 트렌디함을 아는 일을 넘어서, 그렇게 무엇이 폭력인지를 느낄 줄 알고 새로운 비폭력의 법칙 속에 자기를 위치시킬 줄 안다는 걸 의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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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해력 또는 이해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타인을 상상할 수 있는 '힘'이 없다는 뜻이다. 나아가 뇌가 그럴 '용기'를 학습하지 못하는 것이다. 나르시시즘적으로 계속 자기 이해, 자기 입장에 익숙한 방식에만 길들여져서 그에 갇혀버리는 폐쇄성에 머무는 것이다.
인간의 이해력이 가장 필요한 지점도 사실은 이분법 가운데 제3지대를 발견하는 데 있다. 적과 아군의 구별은 단세포생물도 할 수 있는 것이지만 고등동물일수록 이해에 기반을 둔 타협, 화해, 제3의 길로 나아갈 여지가 늘어난다.
아이들은 다채로운 입장과 맥락을 이해하기 이전에 각종 자극적인 콘텐츠를 통해 누군가를 규정짓고, 공격하고, 저격하는 일에 먼저 길들여지고 있다. 바로 그런 문화가 총체적인 이해력을 갉아먹으면서 그 연장선상에 있는 문해력의 위기 또한 불러오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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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대는 저마다의 환상이나 이상을 만들어왔지만 이 시대의 편견은 더 교묘하게 사람들 사이를 파고들어 계급화하는 듯하다. 당연하지만 세상에 구김살 없는 사람은 없다. 비교적 역경을 덜 겪으며 자란 사람은 있겠으나 그것이 꼭 인생 전체에서 봤을 때 좋은 성장 과정이라고 할 수도 없다. 삶에서는 누구나 역경이나 어려움을 겪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마냥 맑고 밝고 티 없는 사람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슬픔과 분노, 걱정을 겪어가면서 주름 그 자체이고 구김살 그 자체인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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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레마의 제3지대에 필요한 것은 바로 그런 '믿음'이다. 어른에게 믿음의 대상은 신이 될 수도 있고 자기만의 가치 체계나 신념이 될 수도 있다. 혹은 사랑하는 사람이나 반려자가 될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는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 자기가 지닌 자산이나 자격증에 대한 믿음이 있을 수도 있다. 무엇이 되었든 그런 믿음의 대상이 바로 제3의 선택을 가능하게 하는 어떤 지점이 있다. 딜레마를 해결하는 연습은 달리 말해 믿음의 연습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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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 비교, 차별, 집단화된 편견이나 선입관 속에서 서로 선 긋고 우월함을 과시하고 열등한 자를 차별하고 그렇게 자식 세대들을 서로 경멸하게 만들며, 사랑 없는 가정의 무수한 선례들은 그렇게 청년 세대의 선택권을 박탈했다. 청년 세대에게 부족한 지원책이나 저출생 문제를 위한 정책 같은 건 부차적인 것이다. 가장 중요한 건 '삶의 모범'이다. 실제로 살아낸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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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움은 갖고 싶지만 지금 나에게 없는 것과 관련있는 반면, 질투는 갖고 있지만 잃어버릴까 봐 두려운 것과 관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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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렐이 말하는 질투는 대개 연인이나 반려자의 외도나 한눈파는 일과 관련되어 있다. 질투는 나의 연인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에서 발생한다는 것인데, 보다 근원적으로는 ‘나 자신’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라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반려자의 외도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그가 헌신한 시간, 서로 사랑한다는 믿음에 뿌리내리고 있었던 자아 정체성, 함께 만들어가는 삶에 부여했던 가치 전체를 잃게 만든다는 점에서 상대방의 자아를 살해하는 일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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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보다 가치 있는 것들로 가득 채워질 때 그 힘을 온전히 발휘할 것이다. 비난하고 싶은 삶에 존중하거나 존경할 점은 없는지, 하잘것없어 보이는 나의 하루에도 보람을 느끼거나 칭찬해줄 만한 것은 없는지 항상 더 많이 생각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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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는 그 모든 것을 일률적이고 폭력적으로 분류하는 심판관이 될 게 아니라, 그 다양한 시간을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무대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만들어가는 문화도 그런 다양한 시간이 존중받을 수 있는 이야기들로 채워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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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이 시대를 결국 이겨내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선택해야만 할 것이다. 피부를 찌르는 것 같은 불안을, 의욕을 말려버리는 두려움을 이겨내고 선택하는 것만이 이 시대를 건너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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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우리 사회는 집단의 우위와 개인의 희생을 당연하게 생각해왔다. 집단적 목표나 규율, 서열을 위해 개인의 인권이나 삶이 심각하게 제한되는 경우가 많았다.

사람이 서열이나 수직적인 조직의 일부가 아니라, 개개인으로 존중받으며 바로 서는 사회에서는 개인과 집단도 조화를 이루어 나간다. 그런 문화 속에서는 집단이 개인을 억압하기보다는 개인의 삶을 든든하게 뒷바침해주는 밑바탕이자 무대가 될 것이다. 개인 또한 집단으로부터의 탈출만 꿈꾸는게 아니라 집단을 살리고 창조해가는 건강한 구성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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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는 작년에 운 좋게 이사를 해서 1년 만에 몇억을 벌었다고 하고, 누군가는 운 좋게 주식 투자에 성공해 몇 천을 벌었다고 한다. 그런 말들 속에서, 삶을 다른 측면으로 사랑할 수 있는 가능성은 점점 더 줄어드는 것만 같다. 가끔은 누구를 만나서 내가 좋아하는 영화나 문학 이야기, 좋은 풍경이 있던 여행 이야기, 사랑이 있던 옛 추억을 말하기도 어딘지 민망하다. 혼자 뜬구름 속을 걷고 있는 것 같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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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은 이유 없이 우울하기도 하고 세상이 온통 적대적으로 느껴지기도 하며 벗어날 수 없는 짜증이 오랜시간 이어지기도 한다. 그럴 때면 구명조끼처럼 꺼내 입을 내 삶에 대한 또 다른 믿음이 필요할 것이다. 어떤 시절은 그런 믿음을 쌓아나가기에 참으로 좋은 때일지도 모른다. 하나의 믿음이 무너진 시절은 또 다른 믿음이 피어오를 토양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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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뛰어들면 어떻게든 하게 된다는 걸 믿게 되어갔다. 뛰어들기 전에는 ‘내가 해낼 수 있을까’, ‘해낼 수 없을거야’, ‘나는 못할 거야’ 같은 두려움에 그냥 지배되고 있을 뿐이다. 스스로를 던져 넣으면 어떻게든 해나가는 게 또 인간이라고 많이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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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삶에서는 두 가지 질문을 계속 지니고 있으면 어떨까 싶다. 하나가 이미 우리 시대의 강박이 되기도 한 ‘나는 행복한가?’라는 질문이라면, 다른 하나는 ‘나는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특히 후자의 질문이 중요한 이유는 그렇게 계속 물음으로써 자기만의 가치를 적립하고 만들어나갈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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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배당하고 있는 감정구조라든지 욕망구조에서 어찌 보면 세상의 많은 것들과 싸워왔는데, 요즘에는 최후의 적은 내 안에 있는 신경전달물질 같은 것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삶의 순간마다 육박해오는 이 감정, 마음과 싸우기 쉽지 않은 경우가 참으로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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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삶은 그야말로 이별의 연속이라는 걸 아주 명확하게 느끼고 있다. 삶에는 말 그대로 이별이 무더기처럼 기다리고 있다. 그 모든 이별은 어렵지만 이별 앞에 늘 덤덤해야 한다는 걸 느낀다. 도래한 이별 앞에 너무 슬퍼하기보다는 입술 꾹 다물고 그저 고개를 끄덕여야 한다는 걸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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