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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st in thought

시간을 파는 상점

by Han Bi Choi 2021. 5.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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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은 알바 지원생 중에 너를 왜 뽑았는지 알아? 몸은 가늘가늘 다리는 새 다리에 접시를 몇 개 들겠나 싶었는데도 네 눈빛 때문에 깡은 있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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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딱딱하게 각져 있지만은 않다는 거, 그리고 시간은 금이다, 라는 말이 좋은 말이기도 하지만 그 말이 얼마나 폭력적인 말인지도 한번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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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조도 대한민국의 고등학생은 양쪽 눈 가장자리에 시야 가리개를 한 경주마처럼 오로지 앞만 보고 질주해야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렇지만 온조는 로봇 같은 경주마가 되고 싶지 않았다. 최소한 왜 뛰는지는 알아야 경주에서 이기든 지든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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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추억, 기억 이런 것들은 지금 내 눈앞에서 일어나는 것들은 아니지만 분명 지금의 나를 움직이는 것이 분명해요. 왜냐하면 그런 것들이 있기에 지금 이 자리에 내가 있는 거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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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시간을 되돌아보면 어떻게 그 많은 일을 헤치며 왔을까 싶네. 그러다가도 꿈결처럼 아스라한 옛일이 되어 현실감이 나지 않기도 해. 요즘은 속도가 너무 빨라. 왜 이리 빠른지 모르겠어. 빠르다고 해서 더 행복한 건 아닌 것 같은데 말이야. 오히려 속도 때문에 사고가 나는 데도 말이야. 기계든 사람의 관계든 지나치게 빠르면 꼭 문제가 생기게 되어 있어. 온조 양도 명심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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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그렇게 안타깝기도 잔인하기도 슬프기도 한 것인가. 삶은 시간을 함께하고 싶은 사람과, 함께하고 싶지 않은 사람 사이의 전쟁 같기도 했다. 함께하고 싶은 사람과는 그렇게 애달파 하고, 싫은 사람과는 일 초도 마주 보고 싶지 않은 그 치열함의 무늬가 결국 삶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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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래? 너답지 않게. 아주 땅 파고 들어가게 생겼다. 너 되게 쿨한 줄 알았는데 왜 이렇게 고전적이냐?”

“야, 백온조!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네가 그렇게 얘기할 줄 몰랐다. 다른 사람들한테는 그렇게 바다처럼 넓은 척하더니, 심지어 도둑놈한테도 그렇게 너그러운 척하더니 뭐? 고전적? 쿨한 게 대체 뭔데? 그 애가 내게 관심이 없다고 그래, 니까짓 거 트럭으로 갖다 줘도 안 갖는다 뭐 그런 식이 니가 말하는 쿨한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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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늘 시간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있을 거라고. 그런데 그 시간은 어떤 예고도 없이 사라져버렸어. 늘 바쁘다고 하면서 필요 없는 시간들을 너무 많이 소비하면서 시간 없다고 한 거라는 것을 알았어. 엄마는 다시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아. 엄마는 소중한 사람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싶어. 그게 결국 엄마를 행복하게 해줄 거라고 믿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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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하지 마. 누가 그래? 너 폼 잡는 게 멋있다고. 그건 그 사람을 잘 몰랐을 때 잠깐 드는 거지, 정작 상대를 사로잡는 건, 그 사람의 솔직함을 봤을 때 아니야? 방금 전 너의 모습처럼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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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와서 놀란 점이 있어. 하나는 저 아래 바다와 바다 사이에 부는 바람의 길 때문이고, 두 번째는 혼자서는 도저히 바닷가 가까이 갈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언덕 위에 있던 사람들 모습이었어. 혼자 바람을 맞는 사람들은 웃지 않아. 반드시 함께 있는 사람들이 웃어. 같이 온 사람의 몸이 바람에 날리는 것을 보거나 머리칼이 몹시 헝클어져 평소에 볼 수 없었던 우스꽝스러운 모습 때문에 배를 잡고 웃는 거야. 나도 누군가 곁에 있다면 웃을 수 있을 것 같았어.”






김선영 - 시간을 파는 상점
2021.05.05에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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